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샬럿 어거스타 (문단 편집) === 어린 시절 === 샬럿이 자라면서 [[조지 4세]]와 캐롤라인의 사이는 점점 더 나빠졌다. 그들은 딸을 국왕 부부의 애정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고, 결국 [[1797년]]에는 별거하게 되었다. 아들을 원했던 [[조지 4세]]의 노력으로 잠시동안 관계가 회복되기도 했지만, 그 이후로는 더욱 악화되었다. 캐롤라인은 딸을 보러 종종 방문하곤 했으며 샬럿 공주 역시 어머니를 찾아가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집에서 머무는 것은 절대 허락되지 않았다. || [[파일:Princess_Charlotte_Augusta_of_Wales_1807.jpg|width=100%]] || || [[1807년]]의 샬럿 공주 || 그러던 중 [[1810년]] 할아버지 [[조지 3세]]의 정신병이 극에 달하였고 [[1811년]] [[2월 6일]]부터 아버지 [[조지 4세]]가 섭정을 하기 시작했다. 샬럿 공주는 엄격한 교육 속에서 점차 반항적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려는 10대로 성장했다. 공부도 다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만 공부해서 [[피아노]]와 [[승마]]는 정말 잘했지만 다른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. 조지 4세가 섭정으로 바쁜 틈을 타 몰래 남자들을 만나기도 했다. 조지 4세를 제외한 대부분의 왕실 사람들은 이를 알고 있었지만 그가 얼마나 엄격한 지 알기에 공주에게 아무 간섭도 하지 않았다. [[1813년]]부터 [[조지 4세]]는 샬럿 공주의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했다. 처음에는 부마 후보로 [[네덜란드]] [[빌럼 1세]]의 아들 빌럼 왕세자[* 훗날의 [[빌럼 2세]]로 나중에는 [[파벨 1세]]의 막내딸 [[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]]과 결혼했다.]를 생각했다. 하지만 샬럿 공주는 빌럼 왕세자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미래의 영국 여왕이 될 자신이 왜 외국인과 결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. 샬럿 공주의 결혼을 이용하여 북유럽까지 영향을 미치고 싶어했던 [[조지 4세]]는 끝까지 빌럼 왕세자와 결혼할 것을 고집했고, 그녀는 결국 [[1814년]] [[6월 10일]] 혼인계약서에 서명했다. 그러던 어느날, 파티에 참석한 샬럿은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[[레오폴드 1세|레오폴트 공자]][* 훗날 [[벨기에]]의 초대 국왕이자 [[빅토리아 여왕]]과 [[앨버트 공]]의 삼촌이 된다.]를 만났다. 레오폴트 공자에게 첫눈에 반한 샬럿 공주가 [[빌럼 2세|빌럼 왕세자]]와 결혼을 못 하겠다고 하자 [[조지 4세]]는 딸을 감금해버렸다. 공주는 거리 밖으로 뛰쳐나왔고 이를 본 어떤 시민이 그녀를 캐롤라인의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. 며칠 뒤 다시 궁전으로 돌아가긴 했지만, 이 일은 순식간에 가십거리가 되었다. 샬럿은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공주였다. 그녀가 모습을 나타내면 영국 사람들은 샬럿이 이미 여왕이 된 것처럼 환호했다. 이런 공주가 [[네덜란드]]로 시집가버린다고 하니 사람들은 [[빌럼 2세|빌럼 왕세자]]와의 결혼을 싫어할 수 밖에 없었다. 결국 [[1815년]] 초 샬럿 공주는 [[레오폴드 1세|레오폴트 공자]]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. 아버지 [[조지 4세]]는 여전히 빌럼 왕세자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샬럿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. 그 해 [[7월]], 마침내 아버지로 부터 [[레오폴드 1세|레오폴드]]와의 결혼을 허락받았다. 맨 처음에 [[조지 4세]]는 [[레오폴드 1세|레오폴드]]를 탐탁지 않아했지만, 나중에는 자신의 딸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며 좋아했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